
민법 제2조는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권리의무의 양 당사자는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서 신의와 성실로써 행동해야 한다는 민법상의 대 원칙이다. 줄여서 신의칙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것은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고려하고 상대방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행동하여야 하며, 형평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사회공동생활의 구성원으로써 법률관계를 형성할 때 상대방에게 기대되는 행위 방식을 신뢰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데, 당사자 일방의 이러한 기대는 보호되어야 하고, 상대방은 상대방의 정당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 신의성실의 원칙이 중시된 것은 권리의 공공성과 사회성이 강조되면서 부터이고 권리의 행사가 이러한 논리에 제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신의칙은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특정시키고, 정확한 의무의 내용을 확정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또한 신의칙은 권리 의무의 내용을 수정하는 기능을 한다. 더 나아가 새로운 권리를 창설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신의칙은 권리를 창설하는 기능이 있다. 신의칙에 의하여 법률상 혹은 계약상 보장된 급부의무 뿐만 아니라 이에 부수되는 의무도 신의칙에 의해 의무로 부과되고 이에 따라 상대방은 이러한 권리를 취득하게 된다. 또 신의칙은 권리를 변경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법률행위의 기초가 된 어떠한 사정이후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거나 변경 또는 소멸된 경우에 법률행위의 효력을 유지시키는 것이 양 당사자에게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므로 이때에는 신의칙을 근거로 하여 계약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계약을 해제, 해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신의칙은 법률의 규정이 없는 경우에 한정하여 적용되어야 한다. 신의칙은 법의 흠결이 있는 경우에 이를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여야 하는 것이지, 독립적으로 새로운 법률제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또 신의칙은 강행규범에 위반되어서는 안된다. 당사자의 행위가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하더라고 신의칙을 적용함으로써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되는 강행규범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신의칙을 고려하다가 사회의 정당한 풍속을 저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신의칙은 그 내용이 추상적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구체적 행위상황에서 어떻게 행위를 해야될지는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신의칙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우선 제정법의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제정법을 우선적으로 적용하여야 하고, 제정법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일반 조항인 신의칙을 적용하여 법률관계를 해결해야 한다.
민법 제2조 제2항에서는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원칙은 신의칙의 파생원칙이다. 따라서 권리행사를 함에 있어서 권리를 남용해서는 안되고, 여기에 위반되는 권리의 남용은 곧 신의칙 위반으로써 법이 권리행사에 효력을 부여하지 않는다.
권리의 남용은 권리를 행사하는 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그 목적에 반하여 행사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러한 정당한 목적이 아닌 권리행사의 경우에는 권리행사가 권리남용이 되는 것이다.
권리남용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권리의 행사가 있고, 그 권리행사로 인하여 얻는 이익과 상대방이 입는 불이익 사이에 불균형이 있어야 하고, 권리행사가 오직 상대방을 해하거나 고통을 가할 목적으로 행사하여야 한다. 즉 주관적으로 권리행사자의 의사를 고려하게 된다. 권리남용에 해당하면 권리행사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권리남용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권리 자체가 소멸되지는 않으며, 다만 행사가 제한될 뿐인 것이다.
하지만 권리남용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엄격해야 한다. 권리는 법에 의하여 주어진 힘인데, 일반원칙인 이 원칙에 의하여 권리행사가 부당하게 제한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권리행사는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하고,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권리남용을 인정하여야 한다.
사정변경의 원칙은 법률관계의 양 당사자가 행위할 당시의 사정이 당사자들이 예견할 수 없었던 중대한 변경이 발생하였을 경우에, 행위 당시의 행위를 요구한다면 오히려 당사자에게 부당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신의칙에 입각하여 당사자 상대방에게 행위의 내용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거나 계약을 해지 또는 해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원칙이 사정변경의 원칙이다.
당사자 사이에 맺어진 계약은 준엄이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계약을 당사자에게 강제하여 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면, 그러한 법은 오히려 정의에 부합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 신의칙은 권리의무의 내용을 변경하거나 해지·해제하여 당사자를 계약관계의 부당한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신중하여야 한다. 쉽게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하여 계약관계로부터 해방시켜준다면, 당사자 합의에 의해 형성된 계약이 이 원칙에 의해 쉽게 부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법에 의해 계약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됨으로써 사회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
우리 판례도 사정변경의 원칙에 입각하여 계약의 해제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적으로 의무를 이행하여야 하는 계약에 있어서는 계속적 계약에서는 당사자가 예측 할 수 없었던 사정이 발생할 수 있고 이로 인하여 당사자에게 부당한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 계약관계로부터 탈피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판례는 계속적 보증계약의 경우에는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하여 예측하지 못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모순행위금지의 원칙은 권리자의 권리행사가 그가 행한 전의 행위와 모순된다면 권리자의 권리행사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권리자가 어떻게 행위할 것인지를 당사자 상대방이 이를 인식하고 이를 신뢰하게 되므로 상대방을 보호하고 권리자의 부당한 권리행사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모순행위가 되려면 권리자의 권리행사가 이전의 행위와 객관적으로 모순되어야 하고, 여기에 권리행사자의 잘못으로 돌릴만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또한 상대방에 대하여 보호할 만한 정당한 신뢰가 존재하여야 한다. 판례는 권리자의 모순되는 행태와 그에 의하여 야기된 상대방의 보호가치 있는 신뢰에 덧붙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 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고 판시하여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모순행위 금지의 원칙에도 한계는 있다. 전의 행위와 다른 행위를 한 때에는 후의 행위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모순행위 금지원칙이 취지이나 강행규정에 위반되어 무효임을 스스로 알면서 그러한 법률행위를 한 당사자가 후에 그 행위가 강행규정에 위반되어 무효임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느냐가 문제되는데, 판례는 이 경우에 신의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한다. 판례는 그것이 신의칙에 위배되어 그 주장을 배척한다면 강행법규로 금지하려고 하였던 것이 실현되는 결과가 되어서 강행규정으로 규정한 입법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이유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같은 경우에 모순행위 금지의 원칙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실효의 원칙이란 권리자가 권리행사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권리행사를 하지 않는 한 결과로 의무자가 권리자가 더 이상 권리행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만한 정당한 기대를 가지고 이에 따라 신뢰를 하였는데, 후에 권리자가 뒤늦게 권리주장을 한다면 이 권리주장은 신의칙에 위배되어 권리행사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는 모순행위 금지의 원칙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정당한 신뢰를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권리자의 부당한 권리행사를 제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권리자가 장기간 권리행사를 하지 않았다고 하여 바로 권리가 실효하지는 않는다. 즉 상당 기간 경과 후의 권리자의 권리행사가 악의적으로 평가하여 의무자를 해한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의무자의 신뢰가 정당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에 한정된다. 의무자의 신뢰가 사회적 보호가치가 없다면 법이 굳이 이를 보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효의 법리는 민법상 존재하는 포기할 수 없는 권리에 대해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는 상대방이 포기할 것이라고 믿은 신뢰를 보호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며, 포기할 수 없는 권리는 그런 신뢰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