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소설가, 평론가이다. 자는 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22세 되던 해부터 거처였던 원각사 근처에서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등과 이웃하며 교우 관계를 맺어 훗날 북학파가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실학의 대가였던 홍대용과도 교우를 터 북학과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제 방법론에 대해서도 깊은 토론을 나누었다. 관직에 올라 출세의 길을 달리지는 못했지만 재야에서 실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 연구와 저술 활동, 소설 집필에 매진하여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거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박지원의 생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은 그의 나이 44세 되던 해(1780년, 정조 4년) 삼종형 박명원을 수행하여 청나라의 열하까지 갔었던 일일 것이다. 이때의 견문 경험을 기록하여..